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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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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ława Szymborska,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최성은 역, 충분하다 Wystarczy, 문학과지성사, 2016 p.61 베르메르 Vermeer 레이크스 미술관 Rijksmuseum의 이 여인이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단지에서 그릇으로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늘 좋다. 충분하다. 하필 이 시가 내린 것은 다시 페소아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저 길고 지루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왔다 간 소식을 들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흐르고, 아마도 나는, 그 마음을 알겠다. 이제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가, 나이를 더해 그런가. 달리 보면 오히려 홀가분할 일. 이러거나 저러거나, 여튼...
[책] 장보영, 아무튼, 산 장보영, '아무튼, 산', 아무튼 029, 코난북스, 2020 p.80 관광객은 그들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고, 여행자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Tourists don't know where they've been, I thought. Travellers don't know where they're going. - 폴 서루 Paul Theroux, The Happy Isles of Oceania: Paddling the Pacific, Penguin Books, 1992 - 폴 서루 Paul Theroux, 이용현 역, 여행자의 책 The Tao of Travel, 책읽는수요일, 2015, p.47 코로나 때문일까, 날씨 탓일까, 서울 산들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작은 책이라 짧은 독서시간을 아쉬워하..
[책] 아트 슈피겔만, 쥐(1&2 합본) 아트 슈피겔만 Art Spielgelman, 권희섭 & 권희종 역, 쥐 Maus 1&2, 서울:길벗어린이, 2014 p.209 모든 말은 침묵과 무(無)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이다 Every word is like an unnecessary stain on silence and nothingness -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2차대전 중 독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부모님의 기록을 담은 만화 책에서 인용처가 분명치 않은 베케트의 말을 찾아 검색한 결과, 잡지 '보그 Vogue(미국판 기준)' 1969년 12월호에 실린 사무엘 베케트의 인터뷰 기사가 출처. 1차 자료를 인용할 것도 아니고... 하지만 유료 기사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아카이브 화면에 나온 사진 속 페이지 글 두 번째 단..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고도 古都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정난진 역, 고도 古都, 서울:눈과마음, 2006 p.170 "올해도 벌써 다이몬지 大文字구나······."책 제목 고도 古都는 교토 京都다. 헤이안신궁 平安神宮 나들이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을 빙자한 교토 둘러보기에 다름 아니었다. 한국인 얘기(p.77)도 잠깐 나온다. 교토 사는 지인이 생각나는 요즘, 갈 수 없는 코로나 시대라 대신 집어든 책. 읽다보면 자연스레 지명 속 풍경이 떠올랐다. 가보지 못한 곳도 많다. 나카가와 기타야마초 京都府京都市北区中川北山町. 일명 스기무라 마을. 이제 교토에 간다면, 비록 7월은 아니더라도, 우선 야사카신사 오타비쇼 八坂神社御旅所를 거쳐, 비록 야마호코 山鉾는 없더라도, 북쪽 산 속으로 향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으리라. '..
[책] 마이클 부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Michael Booth,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글항아리, 2018 북유럽이라기에 손에 쥐었다. 몇 쪽 넘기지 않았음에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즐거웠다. 그런데 어쩐지 내내 불편함이 있었는데 문장이 꽤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딱히 무엇을 가려 지적하기도 그렇지만 번역체라 그런가 아무튼 읽기가 편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간혹 글이 사리에 맞지 않고 기존에 알던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의문이 깊어진 나머지 결국 원문을 찾고야 말았다. 혹시 저자가 착각한 부분이 있는가 싶어서다. 그래서 지금 오역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일단 검색부터 해보니 이 책의 오역에 대한 글을 올리신 분이 계셨다. 머리말 정도라면 ..
[책] 최은영, 쇼코의 미소 최은영, 쇼코의 미소, 2016 - 한지와 영주 p.126, 스물다섯의 젋은 수사가 그 수도원을 세웠을 때, 유럽은 제2차세계대전중이었다. 수도원을 세우고 싶었던 그는 장소를 찾기 위해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을 여행했다. 그곳은 리옹 근처의 작고 황폐한 마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고 남겨진 노인들만이 전쟁 속의 고독을 견디고 있었다. 그가 그 마을에 들렀을 때 한 노부인이 그를 초대해 말했다. "이 적막한 곳에 와줘서 고마워." 그는 그 말을 잊지 못하고 다시 마을을 찾아와 버려진 집을 사다 수도원을 세웠다. p.166사람들은 떠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나는 나에게 속삭였다. ----- 책을 읽다가 문득 덴마크 마을 귈링 Gylling 과 ..
[책] 고은, 남과북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 p.59조치원 남 고자질하는 사람이 없는 들녘 허술한 장사아치인들 허술한 나그네인들 먹을 양식 싸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는 들녘 떠날 제비 드높이 있고 가을은 왜 그다지도 마음 가득한지 그곳을 경부선 호남선이 지나간다 지나갈 뿐 한번도 그곳에 내려본 적 없이 죄스러워라 조치원역 정년퇴직 앞둔 금테모자 역장이 맨드라미 화단의 플랫홈에 서 있다 ----- 머문 자리에서는 늘, 지나간 것들은 참 빠르더군.
[책]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2013 pp.28~29 이해할 수는 없어도 거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며,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 그대를 생각하며... 때론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