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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보니

[책]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ława Szymborska,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최성은 역, 충분하다 Wystarczy, 문학과지성사, 2016

 

p.61

베르메르 Vermeer

레이크스 미술관 Rijksmuseum의 이 여인이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단지에서 그릇으로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늘 좋다. 충분하다. 하필 이 시가 내린 것은 다시 페소아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저 길고 지루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왔다 간 소식을 들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흐르고, 아마도 나는, 그 마음을 알겠다. 이제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가, 나이를 더해 그런가. 달리 보면 오히려 홀가분할 일. 이러거나 저러거나, 여튼.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담배 가게 Tabacaria (1928/1/15 알바루 드 캄푸스 Álvaro de Campos)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영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가 되기를 원할 수조차 없다.
이걸 제외하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꿈을 품고 있다.

내 방의 창문들,
아무도 누군지 모르는 이 세상 수백만 개 중 하나인 내 방에서,
(그리고 만약 안다 한들, 뭘 안단 말인가?)
너희는 행인들이 끊임없이 다니는 어느 길의 신비로 나 있구나,
그 어떤 생각들에도 접근 불가한 길로,
진짜, 말도 안 되게 진짜이며, 맞는, 알 수 없게 맞는 길로,
돌들과 만물 아래 존재하는 것들의 신비와 함께,
벽을 습기로 채우고 머리카락을 희끗하게 만드는 죽음과 함께,
전부의 마차를 무無의 큰길로 모는 운명과 함께.

나는 오늘 패배했다, 마치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나는 오늘 또렷하다, 마치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마치 사물들과 더는 우애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작별뿐, 이 집 그리고 이쪽 편 길이
열 지어 늘어선 기차들로 변하면서, 나의 머릿속에
출발을 알리는 호적號笛 소리,
출발과 동시에 떨리는 신경들과 삐걱거리는 뼈들.

나는 오늘 어리둥절하다, 고민했고 찾았고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오늘 갈라져 있다
바깥의 현실 같은, 맞은편 담배가게에 대한 충성심과
내면의 현실 같은, 전부 꿈이라는 감각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나는 모든 것에 실패했다.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았기에, 어쩌면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집의 뒤편으로 난 창문을 통해
나는 내가 배운 교훈으로부터 내려왔다.
큰 뜻을 품고 시골까지 갔으나,
거기서 발견한 건 그저 풀과 나무뿐,
어쩌다 사람이 있다 싶으면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창가를 떠나, 나는 의자에 앉는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뭐가 될지 난들 알겠는가, 내가 뭔지도 모르는 내가?
내가 생각하는 게 된다고? 하지만 너무나 많은 게 될 생각인걸!
너무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게 되려 하는데, 그렇게 많이는 있을 수 없다!
천재? 이 순간에
10만 개의 뇌가 나처럼 천재라고 꿈속에서 상상하지만,
누가 알랴, 역사는 단 한 명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미래의 수많은 성취들의 거름일 뿐이리라.
아니,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모든 정신 병동마다 확신에 찬 정신병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아무런 확신이 없는 나는, 그들보다 더 옳을까 아니면 덜?
아니, 나는 나 자신조차……
세상의 수많은 다락방과 다락 ― 아닌 방들 중
이 시각에 자칭 천재들이 꿈꾸고 있지 않는 곳이 몇이나 될까?
드높고 고귀하고 비상한 열망들
― 그래, 정말로 높고 고귀하고 비상한,
게다가 실현이 될지 모르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단 한 번도 진짜 햇빛을 못 보거나, 들어 줄 귀 하나 못 찾을까?
이 세계는 정복하려고 태어난 자를 위한 것이지
정복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를 위한 게 아니다, 설사 그들이 맞다 해도.
나는 나폴레옹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이 꿈꿨다.
나는 가상의 품에 예수보다 많은 인류애를 품었다.
나는 그 어떤 칸트도 쓰지 못한 철학들을 비밀리에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리고 아마 영원히, 다락방의 아무개,
비록 거기 살지는 않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위해 타고나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고,
나는 항상 단지 자질은 있었던 사람일 것이며,
나는 항상 문 없는 벽 앞에서 문 열어 주길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닭장에서 무한의 노래 시들을 노래한,
덮여 있는 우물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은.
나 자신을 믿느냐고? 아니, 나는커녕 아무것도.
뜨거운 내 머리 위로 자연을 들이부어라
그 태양, 비,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나머지는 오려면, 아니 와야 하면 오고, 아니면 말아라.
별들의 심장의 노예들,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를 정복했었지,
깨어났더니, 그것이 흐릿하고,
일어났더니, 그것이 낯설다,
우리가 집을 나서자, 그것은 지구 전체이며
또한 태양계이자 은하수이자 무한이다.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선, 은으로 된 종이, 은박 포장지를 뜯자마자
모두 다 땅에 버려 버린다, 삶을 버렸던 것처럼.)

하지만 내가 절대 되지 못할 것들을 향한 씁쓸함으로
최소한 이 시구들의 서투른 글씨체,
불가능으로 향하는 부셔진 관문은 남는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에게 멸시를 바친다, 눈물 없이,
우아하게, 적어도 동작만큼은 너르게 내던진다
나라는 그 더러운 옷을, 되는대로, 만물의 흐름에 맡기듯,
그렇게 나는 상의도 입지 않은 채 집에 있다.

(너, 위로하는 너, 존재하지도 않는 그래서 위로가 되는 너는,
혹은 살아 있는 조각상처럼 상상되는 그리스의 여신,
혹은 말도 안 되게 고상하고 불길한 로마의 귀족 여인,
혹은 지극히 온순하고 화려한 방랑 시인들의 공주,
혹은 어깨를 드러낸 채 냉담한 18세기의 후작 부인,
혹은 우리 아버지 세대를 풍미하던 고급 창녀들,
혹은 무언가 현대적인, ― 정확히 뭔지 모르겠는 ―
이 모든 게, 뭐가 됐건, 누가 됐건,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주기를!
내 마음은 비워진 양동이.
혼을 불러내는 사람들이 불러내는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불러내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창문가로 가서 온전한 투명함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상점들을 보고, 인도들을 보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본다.
서로 교차해 지나가는 옷 입은 생명체들을 본다,
더불어 개들도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이 모든 것이 추방 선고처럼 무겁게 짓누르고,
이 모든 것이 낯설다, 다른 모든 것처럼.)

나는 살았고, 공부했고, 사랑했다, 심지어 믿기까지 했다,
오늘은 부럽지 않은 거지가 없구나 최소한 나는 아니라서
각자의 누더기들과 상처들과 거짓말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너는 한 번도 살지도 공부하지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았겠구나.
(왜냐하면 이것들은 전부, 전혀 안 하면서도 하는 게 가능하니까.)
어쩌면 너는 겨우 존재한 것뿐일지도, 마치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꼬리는 꼬리대로 도마뱀으로부터 떨어져 꿈틀대는.

나는 나를 가지고 나도 몰랐던 걸 만들었고,
나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건 안 만들었다.
내가 입었던 도미노Dominó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누가 아닌지를 곧바로 알아봤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를 잃어버렸다.
가면을 벗으려고 했을 때는,
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 내고 거울로 날 봤을 때는,
나는 이미 늙어 있었다.
취해 있었고, 벗은 적도 없는 도미노Dominó를 이제는 어떻게 입을 줄도 몰랐다.
나는 가면을 버리고 탈의실에서 잠들었다
해칠 염려가 없다고
관리자가 눈감아 주는 개처럼
그리고 나는 내 숭고를 증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내 쓸모없는 시구들의 음악적 본질,
내가 만들어 낸 무언가처럼 널 만날 수만 있다면,
맞은편 담배 가게와 항상 마주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의식을 밟고 선다면,
마치 취객이 걸려 넘어지는 카페트 혹은
집시들이 훔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간 깔개처럼.

그런데 담배 가게 주인이 나타나서 문가에 선다.
나는 머리를 반쯤만 돌린 불안한 자세로, 또
반쯤만 이해된 영혼의 불편한 심기로 그를 바라본다.
그도 죽겠지 그리고 나도 죽겠지.
그는 간판을 남기고, 나는 시를 남기겠지.
언젠가 때가 오면 간판도 죽을 것이고, 시도 마찬가지.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간판이 있던 거리도 죽겠지,
그리고 내가 시를 쓴 언어도.
이 모든 게 벌어진 회전하는 행성도 죽겠지.
다른 행성들의 다른 행성계에서는 사람 비슷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시 같은 걸 지을 테고, 간판 같은 것 아래 살겠지,
항상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마주 보면서,
항상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만큼이나 쓸모없이,
항상 불가능은 현실만큼이나 어리석게,
항상 깊은 신비는 잠든 표면의 신비만큼 확실하게,
항상 이것 또는 저것,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데 한 남자가 담배 가게에 들어섰다 (담배를 사러?)
그러자 갑자기 그럴듯한 현실이 내 머리 위로 무너진다.
나는 활력과 확신에 차서, 인간적으로, 엉거주춤 일어나,
정반대로 말하는 이 시구들을 쓰려 할 것이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걸 쓸 생각에 잠기며
그 담배에서 모든 사상들의 자유를 맛본다.
나름의 길이라도 되듯 연기를 따라가 보며,
나는 만끽한다, 예민하고 적절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형이상학이 불쾌한 기분의 결과라는 자각.

그런 다음 나는 의자 뒤로 몸을 젖히고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운명이 내게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피우리.

(내가 우리 세탁부 딸과 결혼했다면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르지.)
여기까지 상상하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창문으로 간다.

남자는 담배 가게에서 나왔다. (잔돈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형이상학 없는 에스테베스.
(담배 가게 주인이 문간에 섰다.)
마치 신이 내린 본능처럼, 에스테베스도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그는 내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고, 나도 외쳤다 잘 가 에스테베스! 그리고 우주는
이상도 희망도 없이 내 앞에 재구축되었고, 담배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지었다.

pp.42-61,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김한민 역,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세계시인선 25, 민음사, 2018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을 수도 없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내 안에 세상의 모든 꿈을 품고 있다.

내 방 창문들,
그 누구도 모르는, 세상에서 수백만 개 가운데 하나인 그 방의 창문들,
(그 누군가 나를 알았다 한들, 무얼 알았겠는가?)
너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신비로 향해 있다,
어떤 생각도 가닿을 수 없는 거리로,
현실적인, 불가능하게 현실적인, 확실한, 알 수 없게 확실한 거리로,
돌들과 존재들 아래 사물들의 신비와 더불어,
벽들을 축축하게 하고 머리카락을 세게 하는 죽음과 더불어,
아무것도 아닌 길로 만물의 짐수레를 이끄는 '운명'과 더불어.

오늘 나는 패배했다, 마치 진리를 알아버린 듯.
오늘 나는 명료하다, 마치 막 죽으려는 참인 듯,
더이상 사물들과의 유대감도 없어지고
작별 인사만 남아, 이 집과 거리의 이쪽은
늘어선 기차 차량들이 되고,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어대면서,
요동치는 내 신경과 덜커덩거리는 내 뼈들이 시동을 걸고 있듯이.

오늘 나는 당황스럽다, 생각했고 찾았고 잊어버린 사람처럼.
오늘 나는 갈라져 있다, 내가 기대고 있는,
외부 현실로서 거리 맞은편 담배 가게에 대한 신의와,
내부 현실로서 모든 것이 꿈이라는 느낌에 대한 신의 사이에서.

나는 모든 것에서 실패했다.
야망 없이 살았기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실패했는지도.
내가 배워먹은 것들로부터 떠나,
나는 창문을 넘어 집 뒷마당으로 내려갔다.
원대한 계획들을 들고 들판을 내달렸다.
하나 내가 거기서 발견한 거라곤 풀들과 나무들뿐,
거기 사람들이 있다 했더니, 거기나 여기나 그저 또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일 뿐.
나는 창문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는다. 무얼 생각해 본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내가 무엇이 될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라고? 하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는지!
똑같은 것이 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많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라며? 이 순간에
십만 개의 두뇌가 그들 스스로를 나처럼 천재라고 꿈꾸고 있다,
역사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단 하나마저도,
거름들인 거지, 미래의 숱한 점령지들에 남게 될 이 모두가.
아니,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정신병원마다 그토록 확신에 찬 정신 나간 미치광이들이 있다니!
나, 어떤 확신도 없는 나는 더 확실한가 아니면 덜 확실한가?
아니, 나 조차도......
세상에 얼마나 많은 다락방과 다락방이 아닌 방에서
천재들 스스로가 꿈꾸는 이 순간에도 자기를 확신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우뚝하고 고귀하고 명료한 열망들이
-그래, 정말로 우뚝하고 고결하고 명료한 그것들이-
누가 알랴, 어쩌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를 그 열망들이,
현실의 햇빛은 결코 못 보게 되든가, 사람들 귀에는 안 들리게 될까?
세상은 정복하려고 태어나는 자들의 것,
비록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들이 옳다 해도,
이들의 것은 아니다.
나는 나폴레옹보다 더 많은 것을 꿈에서 해냈다.
나는 그리스도보다 더 많은 박애를 가설적인 가슴에 품었다.
나는 칸트도 쓰지 못한 철학을 비밀리에 창안해냈다.
하지만 나는 다락방 사람이고,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비록 거기에 살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사람'이 될 것이고,
나는 언제난 '단지 자질만 있었던 사람'이 될 것이며,
나는 언제나 문 없는 벽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사람일 것이고,
닭장 안에서 '무한'의 노래를 노래한 사람이자,
막힌 웅덩이 안에서 신의 음성을 들은 사람일 것이다.
나 자신을 믿는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자연'은 뜨거운 내 머리 위로
자신의 태양, 자신의 비, 내 머리칼을 헤집는 바람을 퍼붓겠지.
나머지는 올 예정이거나 와야 한다면 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지 않겠지.
별들의 심장 노예들,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모든 세상을 정복했다.
하지만 우리가 잠에서 깨니 세상은 희뿌옇다,
일어났더니 외계 같다,
밖으로 나갔더니 세상은 지구 전체다,
거기에다 태양계와 은하수와 '무한'이다.

(초콜릿을 먹어라,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라!
과연 세상에는 초콜릿 말고 다른 형이상학은 없다.
정말이지 모든 종교는 제과점 말고는 가르쳐주는 것이 없다.
먹어라, 지저분한 소녀야, 먹어라!
너와 같은 진정으로 내가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하지만 생각해보니, 은종이 박지를 벗기면서,
나는 모든 것을 땅바닥에 내던진다, 삶을 내동댕이쳤듯.)

하지만 적어도, 결코 내가 무엇으로도 존재하지 못할 거라는 쓰라림이,
성급하게 휘갈긴 이 시구들의 필체가,
'불가능' 위로 무너진 주랑현관柱廊玄關이 남는다.
그래도 최소한 나는 나 자신에게 눈물 없는 경멸을,
적어도 고귀한 경멸을 바친다, 이 과장된 몸짓으로
나 자신을 빨랫감처럼 목록에, 사물들의 흐름 속에 내던지면서.
나는 셔츠도 입지 않은 채 집에 있다.

(오, 나의 위로자, 존재하지 않아서 위안을 주는 이,
당신은 살아 있는 동상으로 구상된 그리스 여신이어라,
또는 엄청나게 고결하면서도 끔찍한 로마의 귀족 여인,
또는 우아하면서도 매력덩어리 같은 음유시인들의 공주,
또는 어깨를 드러낸 채 멀리 있는 18세기의 후작 부인,
또는 우리 아버지들 시대의 유명한 고급 매춘부,
또는 무엇인가 근대적인 것 -그것이 뭔지는 잘 몰라도-
그것이 무엇이든, 너희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 모두가 내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내게 다오!
내 마음은 텅 빈 양동이,
정령들을 불러내는 자들이 정령들을 불러내듯이, 나는
나 자신을 불러내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절대적인 선명함으로 거리를 본다.
가게들을 보고, 인도들을 보고,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옷을 입은 살아 있는 존재들이 서로 스쳐가는 것을 보고,
개들도 역시 존재하는 것을 본다,
이 모든 것이 추방 선고처럼 나를 짓누른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처럼 이질적이다.)

나는 살았고, 공부했고, 사랑했고, 심지어 믿었다.
그리고 오늘은, 단지 내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거지가 부럽다.
나는 각자의 누더기와 상처와 거짓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마도 넌 전혀 살지 않았고 공부하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을 거라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 모든 현실을 꾸려갈 수 있으니까.)
어쩌면 너는 간신히 존재해왔는지도 모른다, 꼬리를 자른 도마뱀처럼
잘리고도 계속해서 실룩실룩하는 도마뱀 꼬리처럼.

나는 내가 몰랐던 것으로 나를 만들었고,
나를 갖고 만들 수 있었을 것을 만들지 않았다.
내가 입었던 도미노 옷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내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되었고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내가 가면을 벗으려고 했을 때
가면은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다.
내가 가면을 벗고 거울을 보았을 때
나는 벌써 늙어 있었다.
나는 취했고, 내가 벗지 않은 도미노 옷을 더이상 입을 줄도 몰랐다.
나는 가면을 내던졌고 탈의실에서 잤다,
운영상 용인된 개처럼,
왜냐하면 무해하니까,
나는 이 글을 내가 숭고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써내려가는 중이다.

무용한 내 시의 음악적 본질,
내가 만들어낸 것으로서 혹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저기 길가 맞은편 담배 가게를 늘상 바라보기보다는
취객의 발에 걸리는 깔개나
집시들한테서 훔친 도어매트처럼 아무 가치도 없는
나의 현존감을 발로 짓눌러버리면서.

그런데 담배 가게 주인이 나타나 문가에 선다.
나는 불안정하게 반만 붙들린 영혼을 뒤섞어
불편하게 반만 목을 돌린 채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그는 간판을 떠날 것이고, 나는 시를 떠날 것이다.
마침내 그의 간판도 죽을 테고, 내 시도 죽을 것이다.
결국 간판이 있던 거리도,
그리하여 시가 적혀 있던 혀도 죽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 만물을 돌리던 지구의 수레바퀴도 멎을 것이다.
다른 우주의 다른 행성들에서는 사람 같은 무언가가
계속해서 간판 같은 것들 아래에 살면서 시 같은 것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언제나 다른 것과 마주한 어떤 것,
언제나 다른 것만큼이나 무용한 어떤 것,
언제나 현실만큼이나 어리석은 불가능한 무엇,
언제나 곁에 잠자고 있는 신비만큼이나 진짜인 내적 신비,
언제나 이것 아니면 언제나 저것, 또는 이도 저도 아닌 것.

하지만 한 남자가 담배 가게로 들어갔다. (담배를 사기 위해?)
그리고 그럴듯한 현실이 갑자기 내 위로 무너진다.
나는 힘차게, 확신 있게 인간적으로 몸을 반쯤 일으키고,
정반대를 말하는 이 시를 쓰려고 생각한다.

그 시를 쓰려고 생각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의 해방을 음미한다.
나 자신의 향로라도 되는 듯 담배 연기를 뒤따르며,
나는 맛본다, 감각적이고 유능한 순간 속에서
모든 내 사변으로부터의 해방을,
형이상학은 편안하지 않음의 결과라는 그 의식을.
그러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운명'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나는 계속해서 피울 것이다.

(만약 세탁부 여인의 딸과 결혼했다면 아마도 난 행복했을지도.)
이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창문으로 간다.

남자가 담배 가게에서 나왔다.
(잔돈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아, 나는 그를 안다: 형이상학이 없는 에스테베스.
(담배 가게 주인이 입구에 나타났다.)
신성한 직감이라도 느낀 듯, 에스테베스는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나에게 손짓으로 인사했고, 나는 그에게 외쳤다. '안녕, 에스테베스!' 그리고 우주는
이상도 희망도 없이 나에게 재구성되었고, 담배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지었다.

pp.71-79, 안토니오 타부키 Antonio Tabucchi, 김운찬 역,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문학동네, 2015


https://youtu.be/0jjE-2FqqpM

https://vimeo.com/57587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