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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면

덴마크 여행기 08 - 코펜하겐, 드라우웨어(Dragør)

2004년 7월 2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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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와서 거의 내내 날이 좋았다.  날이야 흐려도 그만, 맑아도 그만, 저나 내가 설 일 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이하 생략.

동네 구석구석 골목마다 둘레둘레 바람 잔 날 배 지나 듯 어슬렁 어슬렁 길을 나선다.  게으른 나는 이게 구경이다.  오후에는 S 커플과 Dragør 드라우웨어에 가기로 했고 오전에는 공원 갔다, 식물원 갔다 하면서 양껏 한가해 볼 참이다.  ^^;;

Rosenborg 호슨복으로 가는 길에 교회가 보여서 또 들렀다.  Sankt Pauls Kirke 사도 바울 교회.  아무래도 버릇같다.  생각해 보면 유럽은 기독교 국가니까 뭔가 다르겠지 하는 것도 있다.  마치 우리네 유형 문화 유산 태반이 불교 유물인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종교적인 심성 탓이기도 하겠지.  일부터 교회를 찾는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가령 지난 2004년 5월 덴마크 왕자 부부의 결혼식이 열린 Vor Frue Kirke(Church of Our Lady) 성모 마리아 교회라도 가볼만하지 않았을까?  

열차길을 내려다 보고 있다.  빨간 기차, 초록 기차, 낡은 기차, 매끈한 기차...  중앙역에서부터 열차는 코펜하겐 시내를 지하로 지나 이곳에서 다시 지상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가보다.  어김없이 빼곡한 그라피티를 보면서 아찔했다.  바로 철길 옆이다.  누구라도 살고 죽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없을텐데...

Botanisk Have 코펜하겐 식물원에 갔다. 코펜하겐 대학 부설인 이곳은 열대 식물이 가득한 온실을 비롯해 연못, 선인장 언덕 등등 성실했다.  온실 내 식물들은 관광보다는 실제 연구를 위한 듯 빽빽했다.  온실 2층까지 철 계단이 있었는데 올라가보니 한결 무더웠다.  확실히 연구실이다.  유치원 같아 보였는데 아이들이 구경온 모습이 귀여웠다.   

공원에서, 오는 길에 산 샌드위치를 먹었다.  혼자 먹을 때면 종종 맛을 잘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고 Sundby 썬뷔 역에 내려서 S에게 핸드폰을 했다.  S는 코펜하겐 대학기숙사에 사는 학생이다.  덴마크에서는 우리처럼 학년과 나이에 맞춰 일찌감치 대학교를 마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학비도 없고 기초 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아무튼 해외 여행도 많이 하고 다양한 경험도 쌓고 해서 졸업까지 넉넉한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일까, 덴마크 사람에게 영어는 기본이고 3개국어 이상 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덴마크 사회보장제도에서 국민이 누리는 부문만 얘기하자면, 그리고 그걸 우리네 처지와 비교하자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덴마크는 국민 모두가 고르게 부를 나누고 있는 나라다.  덴마크에서 아주 부자와 아주 가난한 사람은 드물다.  전에 인터넷 뉴욕타임즈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당대에 가난한 계층에 속한 가족이라도 바로 자기 자식대에 중산층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를 알아본 결과 덴마크에서는 대부분 그게 가능했다.  상대적으로, 비교 대상이었던 다른 부자나라들은 3대, 4대를 내려가서야 겨우 가능했다.  덴마크 사회보장제도의 힘이다.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지만 한국의 경우 해가 갈수록 오히려 소득의 불균형과 빈곤의 세습이 굳어지는 듯해서 아쉽다.  근데, 덴마크가 천국이란 말이 아니니까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그저 좋은 점도 있다는 정도로 이해 바란다.

S 커플이 지하철역으로 마중나왔다.  역에서 대학기숙사까지는 연이은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꽤 걸어가야 했다.  집들이 허름해 보였는데 기억을 더듬자면 무허가 거주자를 양성화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말을 한 듯 하다.  허름하다고 해서 판자촌이라는 건 아니지만 목조 주택이 틈없이 붙어 있어서 화재위험도 커 보였다.  이곳 Amager 아마 지역은 코펜하겐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네라고 한다.

덴마크에서 대학기숙사는 재미있는 곳인 듯 싶다.  사실 S 커플이 이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것은 불법이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왠지 이 나라는 혼자 보다 동거가 더 자연스러운 거 같다는.  부럽기도 하군.  ^^;;  이게 워낙 연원이 깊은 일이라 공식적으로는 거주자가 500명인 기숙사라고 하면 그 배인 1000명이 사는 경우가 흔하다고 덴마크인 스스로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한다.  혼자 살 방에 둘이 사느라 여간 비좁지 않았지만 시설은 나쁘지 않다. 식당과 TV실은 공용이다.

친구에게 구했다는 자전거 한 대를 더해서 나란히 Dragør 드라우웨어로 향했다.  이곳은 Kastrup 캐스톱 공항 근처다.  가는 길이 공항 활주로 밑을 가로지르다 보니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가 바로 눈 앞에 있다.  테러 때문에 지금은 철조망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마저 없어서 더 가깝게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아서 바다가 정말 아름답다.  이 작은 마을은 집들도 아름답다.  일단 차를 한 잔 했는데 처음으로 Hyldeblomster 휠레브롬스터를 맛 보았다.  따뜻하게도 마시고 차갑게도 마시는데 이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후 덴마크 카페에서는 물론 슈퍼에서 병으로 사다가 냉장고에 넣고 시원하게 마셨다.  참, 여기 화장실은 노크를 하지 않고 설사 노크 하더라도 안에서 대답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실례라고 한다.  살짝 열어보고 잠겨 있으면 그냥 기다린다.

Dragør 드라우웨어 마을에는 접시꽃이 가득했다.  용케들 옛 집을 잘 관리하고 산다.  집집마다 거리로 난 창문에는 재미있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Gade Spejl(Street Mirror)라고 일종의 스파이(!) 장치라고나 할까?  집 안에 가만 앉아서 이 거울을 통해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다볼 수 있게 했다.  미스 마플(Miss Marple) 생각이 났다.  영국과 덴마크는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말이다. 

오늘 진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좋은 사람과 좋은 날씨, 상쾌한 바람, 탁트인 시야, 아름다운 풍경 등.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도 좋고 거창하고 대단한 볼거리도 물론 좋지만 그런 거 다 보다 별반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내게는 특별한 사람과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러나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공원에서 날 좋은 때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맛있는 것도 먹고 뭐, 그런 게 휠씬 더 좋은 것을 어쩔 수 없다.  다시 코펜하겐에 온다면 글쎄, 그때도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이번에는 Bakken 바켄쪽으로 가보고 싶다.  Charlottenlund, Klampenborg 그리고 Dyrehaven(사슴공원 Deer Park)...  좀 힘들라나...  적고 보니까 어째 부자 동네를 대충 훑은 듯도 하다.  혼자 가기는 영 흥이 안 나는데 누구 같이 갈 사람 어디 없을까?  ^^

저녁에는 미리 알아본 대로 Københavens Synagoge 쉰나고어(Synagogue 시나고그: 유대교 예배당)에 들렸다.  아침에 들렸을 때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 외부인 출입이 어렵다고 했지만 잠시만 돌아보겠다고 조르고 졸라서 미리 관계자에게 허락을 얻었었다.  약속대로 오후 예배 후 찾아가서 잠시 내부를 둘러보았다.  실내에 들어갈 때 내 가방은 문 밖에 두고 작은 모자를 머리에 얹도록 요구했다.  남녀를 구분해 여자는 2층에 있었고 남자들은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갔을 때는 예배가 끝난 후라 몇몇 사람만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니까 표정들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랍비만 웃는 얼굴로 맞아 주었다.  보통 때는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했다.  유대교 예배당을 방문하려는 외부인은 이와 같이 전화와 예배당 앞 인터폰을 통해서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한다. 

돌아오는 길 시내 Strøget 스토이이트 뒷골목 가게 창문에 우리나라 영화 '실미도'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보았다. 세상이 이렇다.

- 인터넷에서 유대 달력을 찾아 보았다.  2004년 7월 27일은 유대력 5764년의 Tishah B'Av (다섯번째 달 AV의 9번째 날)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슬퍼하는 날이라고 한다. 

- Hyldeblomster (Elder  Blossom) : 검색해보니까 덴마크어 'Hylde'가 영어로는 'Elder'고 한국어로는 '딱총나무'란다.  따라서 '딱총나무 꽃'이 덴마크에서는 'Hyldeblomster'다.  카페나 슈퍼마켓에서 'Hyldeblomster 휠레브롬스터'라고 하면 '딱총나무 꽃으로 만든 음료'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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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der(딱총나무) 꽃과 열매


Elder

Botanical: Sambucus nigra (LINN.)
Family: N.O. Caprifoliaceae
---Synonyms---Black Elder. Common Elder. Pipe Tree. Bore Tree. Bour Tree. (Fourteenth Century) Hylder, Hylantree. (Anglo-Saxon) Eldrum. (Low Saxon). Ellhorn. (German) Hollunder. (French) Sureau.
---Parts Used---Bark, leaves, flowers, berries.

출처: http://www.botanical.com/botanical/mgmh/e/elder-04.html


< 사진 설명 >

1 - 2.... Sankt Pauls Kirke 사도바울교회
3 - 5.... 열차와 열차길
6 - 8.... Botanisk Have(코펜하겐 식물원)
9 - 12... Sunby 썬뷔 지하철 역
13 - 15  코펜하겐 Kastrup 캐스톱 공항 비행기 이륙 모습
16 - 47  Dragør 드라우웨어 항구와 바다 풍경
48 - 57  Dragør 드라우웨어 마을 풍경
52 - 53  Gade Spejl(Street Mirror) 스파이 거울
57........ 팔려고 내놓은 집, 부동산 전화번호
58 - 63  지하철 맨 앞에서 본 모습(기관사 없는 전자동 지하철)
64........ Strøget 스토이이트 뒷골목에서 만난 한국영화 '실미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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