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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면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기(2010) - 산 미니아토 알몬테 교회 Basilica di San Miniato al Monte &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

그대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피렌체에서.  ^^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에서 보는 것은 또 보고자 하는 것은 아마 '과거'일 것이다.  그것도 오늘날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어느 한 때. 
그리고 영화와 소설이 적절히 버무린 로맨틱한 이미지, 할인 매장과 명품이란 묘한(?) 조합 그 어디쯤이 아닐런지.  르네상스를 고스란히 담아낸 피렌체의 모습은 '욕망' 그 자체였다.  르네상스란 게 이런 거였구나.  그것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게 역설적이다.  살아있는 과거라고 해봐야 역시 유령일 따름이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게 피렌체를 떠도는 '유령들(?)'이라면 내가 만나고 싶어했던 것은 뭘까?  어쩌면 무엇을 기억하는가라는 기억 그 자체보다도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삶의 문제가 더 궁금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산 미니아토 알 몬테 교회'를 찾은 이유를 굳이 꼽자면 그래서랄까.  아무튼 피렌체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결국 내가 본 것이 그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나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자, 여기까지는 그냥 멋부리자는 얘기고 사실 누군들 그 과거로부터 자유로우랴.  그건 그렇지만 과거는 과거고 오늘은 오늘을 즐기자구요.  ^^;;

산 살바토레 알 몬테 교회 Chiesa di San Salvatore al Monte
산 미니아토 알 몬테 교회 Basilica di San Miniato al Monte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

먼저 미켈란젤로 광장과 산 미니아토 알 몬테 교회가 있는 언덕을 오르는 길 얘기를 해야겠다. 
내 경우에는 '바르디니 정원' Via de' Bardi 쪽 출입구로 나와서는 오른쪽으로, 피렌체 시내에서 오자면  '그라찌에 다리 Ponte alle Grazie' 건너 안쪽, Via di San Niccolò 거리와 Via San Miniato 거리를 거쳐 성벽에 난 문을 지나 Via del Monte alle Croci 거리로 가서 중간에 만난 Via di San Salvatore al Monte 언덕길을 올랐다. 지도에서 빨간 화살표로 표시한 길이다.     


미켈란젤로 광장 가는 언덕길이 힘든 오르막이라기에 좀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걸어본 결과는 동네 뒷동산보다도 못한 느낌이다.  뜨거운 한 여름 오후에 그 정도였으니 서늘한 다른 계절에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람마다 견해 차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오르막 경사가 심하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혹시 Torre San Niccolò/Porta San Niccolò 가 있는 Piazza Giuseppe Poggi에서 출발해 미켈란젤로 광장에 오른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도에서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길이다.  어느쪽 길로 오르건 각자의 선택. 

글로 설명하려니 좀 복잡해 보이지만 정작 길은 그렇지 않다.  골목길과 미켈란젤로 광장 주변 치안이 밤에는 어떤지 몰라도 낮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시내에서 12번이나 13번 버스를 타면 미켈란젤로 광장에 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주택가 골목을 지나 오르막 길을 걸어 올라가는 쪽을 추천하고 싶다.  아니면 반대로 걸어서 내려오는 건 어떨런지...   

미켈란젤로 광장 가는 길 지도링크

Via San Miniato 거리와 Via del Monte alle Croci 거리 사이 성문
미켈란젤로 광장 가는 오르막 길
가게와 가게 사이가 오르막길 끝. 사진 오른쪽 방향으로 길이 광장으로 이어짐

언덕길이 끝나면서 차도와 만나는데 그 지점에서 왼쪽으로 가면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이다.  피렌체 전망이 남다른 곳으로 유명하다.  가볼만하다.  그 대신 바로 앞 횡단 보도를 건너면 바로 '산 살바토레 알 몬테 교회 San Salvatore al Monte'다.


'산 살바토레 알 몬테 교회' 옆 문을 나와 다시(!) 언덕을 오르면 주차한 차들 사이로 교회 앞 마당으로 이어지는 출입구가 나온다.  드디어 '산 미니아토 알 몬테 교회 San Miniato al Monte' 도착.  '잘도 통치되는 도시를 루바콘테 위에서 굽어보는 교회(pp.105-106, 단테 알리기에리, 김운찬 역, 신곡 : 연옥, 열린책들, 2007).'


교회 지하 예배당(La Cripta/The Crypt)에서 수도사들이 부르는 성가를 듣고 싶었다.  수도사들만의 미사.  결과적으로는 전체 미사에 참석하고 말았지만.  일단 문제는
매일 있다는 이 미사 시간이 책마다 달랐다는 것.  오후 4시라고도 하고 5시라고 했다.  섬머타임이란 변수가 있지만 - 가령 겨울 4시, 여름 5시 이렇게 - 아무튼 내 경험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2010년 8월 기준으로 오후 5시가 맞다.  수도사들의 성가가 끝나면 곧바로 전체 미사가 이어졌다. 
 


오후 4시가 되기 십여 분 전쯤 교회에 도착했고 들어서자마자 바로 지하 예배당으로 내려가 맨 앞에 앉았다.  만약을 몰라서다.  숨을 몰아쉬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오른쪽 벽 쪽문이 열리더니 수도사 한 분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셨다.  왠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5시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4시도 훨 지나고 땀이 좀 가시자 일단 지하 예배당을 나와 교회 전체를 둘러 보았다.  황금빛 교회 벽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특히 '산 지오반니 세례당 Battistero di San Giovanni' 갔을 때, 언제 '라벤나 Ravenna'에 가볼까 싶다.  마케도니아 호숫가 교회 이콘들도 보고 싶다.  그렇듯이 일부러 갈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그런 날이 올런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지하 예배당 맨 앞자리.  오후 5시가 되자 시간마다 들리던 종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를 전후로 수도사들이 들어서며 잠긴 철문을 열고 미사 준비를 했다.  어느새 지하 예배당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일요일이라 그랬겠지 싶다.  젊은 수도사도 있었고 서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늙은 수도사도 있었다.  그들이 한 사람씩 나서며 한 음절씩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안 성가 Gregorian chant가 맞을까?  한동안 이어지던 성가가 끝나고 본격적인 미사를 시작했다.  중간에 들어오신 한 이탈리아 할머니가 내 곁에 앉으며 밝게 웃으신다.  그리스도교 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거리낄 건 없지만 계획했던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미처 동전도 준비하지 못했고 성체성사(聖體聖事)도 하지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다들 돌어설 때 처음과 달리 어색해 하시던 할머니께 다가가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냈다.  이래서 결국은 다시 미사에 참석하고 말았다는 또 다른 이야기가...             

좋은 시간이었다.  여기서만 3시간여를 보냈다.  거참...  ^^

일광절약시간(섬머타임) 덕분에 해가 길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시 전경은 정말 멋지다.  돌아오는 길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까지 13번 버스를 탔다.  저녁은 늦었고 호텔에서 알려준 식당은 문 닫았고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져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미국 햄버거는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을까, 이 피렌체에서.  그거 궁금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