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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보니

십 년

Ep.1.

화엄경, 무비역, 민족사, 2004 - 화엄경 제75권, 입법계품 제39장 16절
9권 394쪽(한글), 12권 411쪽(한문)

사랑하는 물든 마음으로
雖以愛染心

Ep.2.

Keith Jarrett & Charlie Haden, Jasmine, ECM, 2010

1. For All We Know
2. Where Can I Go Without You
3. No Moon At All
4. One Day I'll Fly Away
5. I'm Gonna Laugh You Right Out Of My Life
6. Body And Soul
7. Goodbye
8. Don't Ever Leave Me

Ep.3.

사랑하는 물든 마음이라...

더운 날을 나느라 가끔, 경을 읽고는 한다. 분명 부질없는 중생이라 얻어 걸린 구절이 이럴 것이다. 불가에서 '물든다'라는 말은 '근묵자흑 近墨者黑'이란 사자성어의 관용적 용례처럼 부정적 의미가 있다. 왜 그랬을까 묻는 건 더 바보 같은 일이겠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일도 있고, 굳이 마음 낸 것도 아닌데 불쑥 그 자리에 들고 마는 기억도 있다. 흔한 일은 아니다, 십 년 전 그날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스운 게 잊고 지내다 문득 되살아나곤 하는데 꼭 그럴 일이 생긴다. 어디보자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2007년 그러니까 3년 전이었군. 이번에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왔다. 아무튼 그래서 그 날이 기억났는데 가만 보니까 올 해로 딱 십 년이다. 2000년 7월 첫번째 토요일. 그 날 노면 공사로 온통 들쑤셔 놓은 인사동 거리는 한 마디로 정신 없었다. 대나무 발, 물방울 무늬, 약장사, 어두운 색 구두코, 맨 발, 손수건, 코모레비 木漏れ日, 돌담, 광화문, 기네스, 지하상가, 서울역. 아마도 그래서 블랙홀이라고 했나 보다.

사막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지난 여름은 'Melody Gardot'의 'My One And Only Thrill'과 함께 보냈다. 태에 든 듯 환상처럼 그 더위의 언저리가 겹쳐 보일 즈음부터는, 블로그 친구가 보내준 음반 'Jasmine'을 듣고 있다.'Keith Jarrett'과 'Charlie Haden' 이 두 거장에 대해서야 무슨 말을 덧붙이랴. 연주곡 제목을 따라 듣다 보니까 꼭 연애하는 기분이다. 근데 그 음악이 무척 여유롭다. 애매하네. 영감들 눙치는 구라가 만만찮구만. 헤어나질 못하겠네.

블로그에 인용한 'Keith Jarrett'의 속지도 읽다 'Closeness won’t have to necessarily be physical'이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세월 간다고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이른 아침 역을 나서면 간혹 바로 옆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 꼰 빤나를 마시곤 한다. 어린 날 처음 차를 가까이한 이래 커피는 마신 적도 없었지만 오늘날 이렇게 가끔 에스프레소 꼰 빤나를 마신다. 달라진 건 이정도 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십 년 전 내가 본 모습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부끄럽다. 없던 인연으로 잠시 머물렀던 순간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 여름은 과연 끝이 났다. 아침 저녁으로 여간 쌀쌀한게 아니다. 이리 저리 주변에 떠다니는 조각들을 한데 꿰어 놓으니 이런 글이 나왔다. 세월이 그렇게 갔다. 요즘 일이다.

Ep.4.

p.11,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 지성, 1990

느낌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에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Ep.5.

p.149, 이우환, 남지현 역, 시간의 여울, 디자인하우스, 2002

기억의 바다는 멀고도 깊었다.

Ep.6.

네이트와 싸이 클럽간 결합 작업이 한창이다. 클럽 대신 네이트 메인 페이지에 로그인한 건 그래서다. 몇 년만인지. 싸이에 가입한 이유는 외산 노트북 때문이었는데 사용하지도 않거니와 오래전 일이다. 그런 오늘, 네이트 메인 화면에 이름이 하나 떴다. 친구 업데이트란다. 무슨 일일까, 기억에도 없는 싸이 설정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추측컨데 예전 그 사람 홈피를 방문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 같다, 아마도.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놀랐고 한편 우습기도 했다. 오래전 그 사소한 개인 정보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기업의 집요한 이윤 추구 욕망이 소름 끼친다 뭐, 이런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진 세월 속에서도 이렇게 남아있는 것들이 있구나'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유치해서 웃고 말았다는... 씁쓸했다.

추석도 지나고 작업을 마쳤는지 클럽 페이지가 다시 열렸다. 친구 업데이트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