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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면

덴마크 여행기 23 - 오후스

2004년 8월 1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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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S씨와 함께 한 집안 행사다.  일하시는 곳, 예전 살던 집, 학교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내가 제안한 일이다.  일단 회사 구경을 했다.  Danisco 다니스코.  현관 안내 데스크에서 방문증을 주신 분이 덴마크 사람과 결혼한 한국계 덴마크인이었다.  우연이었다.  왜 사람들은 내가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말을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겨우 며칠이건만...

꼼꼼한 분이라 미리 내 회사방문을 회사와 직원들에게 통보했다고 하신다.  회사 허락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료 직원들 한 명 한 명 일일이 알리셨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케팅 부서부터 연구실까지 두루 돌아 보며 인사를 나누고 설명을 들었다.  사실 회사 견학이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저 그들의 삶을 보고 싶었을 뿐.  아무튼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실험실에서는 제품 개발 중인 아이스크림 등 몇 가지 유제품을 맛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시아인을 겨냥해 두유제품도 개발 중이란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위생복에 모자에 신발에 이런저런 위생 장치를 거치는 등 난리 피면서 이것저것 보고 들은 건 많은데 기억은 안 난다.  유명한 회사와서...  한 가지, 아이스크림 구성 성분 중 거의 대부분이 물과 공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좀 과장하자면 거의 99 퍼센트.  다만 맞는지는 모르겠다.  참, 다니스코는 두유나 아이스크림 등을 직접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혹시나 해서...  ^^;;

회교도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시장인 Bazaar 바자(덴마크 발음으론 '바사')에 가보았다.  물론 무슬림만 이용하는 건 아니다.   덴마크에서는 무슬림이 적지 않은지 길을 걷다 흔히 만나는데 오후스 역시 이런 시장이 있을 정도다.  대부분 이민이겠지 싶다.  최근에도 뉴스에서 보았지만 그보다 작년 초인가 Jyllands-Posten 율란드 포스텐 신문에 실려 문제가 점차 커졌던 모하메드 만평 사건이 떠오른다.  뉴스 사이 사이에서 이 곳 바자의 모습과 오후스 시내 거리가 겹쳐 보였고 문득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 지옥편 28곡 중에서

나는 턱주가리에서 방귀 뀌는 곳까지 찢긴
자를 하나 보았는데, 허리나 밑바닥이
헐린 통일지라도 그처럼 들창이 나진 못할 것이다.
두 다리 사이에 창자가 매달려 있고
내장이 나타났고, 삼킨 것을 똥으로
만들어 내는 처량한 주머니(위)도 나타났다.
내가 그를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는 나를 쳐다보며 두 손으로 가슴팍을 열고서
말했다.  "내 찢어 여노니, 이제 보아라.
마호메트가 어떻게 찢어 졌는지 보려무나!
내 앞에 울며 걸어가고 있는 자, 그는 알리
얼굴은 턱부터 이마의 털까지 찢어졌다."

(pp.281 - 282, 단테 알리기에리, 한형곤 역, 신곡, 서해문집, 2005)


덴마크는 막대한 대외원조와 모범적인 국제협력으로 이름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여행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 타인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수준 높은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많은 난민이 이 곳에서 자리를 잡고 산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다. 

'아마 오해일 거야.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었겠어?  게다가 이질적인 요인들도 있고.  해서 부풀려진 거야.' 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덴마크 사람이라면 쬐금 불쾌한 기분으로.  딱히 상식을 벗어난 일이 아니니까.  덴마크 사람과 길게 얘기할 기회가 없어서 좀 그렇지만 말이다.

단지 어찌보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자기 입장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모습이라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생각도 했다.  우리의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시각만이 아닌 것처럼, 아무래도 덴마크 역시 기독교 사회니까 하면서 떠오른 게 단테였다.  단테의 <신곡>에서 모하메드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면 기독교인이 보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뿌리가 꽤나 깊은 것 같다.  이슬람 선지자 모하메드는 사위 알리와 함께 기독교 지옥에서 몸이 둘로 찢긴 채 온갖 고통을 받고 있다.  더구나 스스로 회개(!)하면서 말이다.  하긴 유일신 종교란 게 원래 배타적인 면이 없지 않다.

옛날 사람 단테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유럽에서 정치와 종교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고 상대적인 다원주의 문화가 절대적인 가치로 일세를 풍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말하며 이슬람을 비난하는 미국인이 가끔은 이상하다.  프라이머리(Primary)와 코커스(Caucus)를 앞두고 나선 후보의 면면을 보면 이 나라가 얼마가 기독교 국가인지 알 수 있다.  비록 그 기원에  대해 말도 많지만 어쨌거나 기독교와 크리스마스를 떼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덴마크에서 가장 큰 명절이 크리스마스인 건 우연이 아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다.  거참.  교회 다니는 덴마크 사람 별로 못봤는데...  중세 십자군 시대도 아니고...  별 생각 없던 일이었을텐데...  어찌보면 오비이락(烏飛梨落) 같은 일로 여길 수도 있건만...  말도 참 많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은 적은 법.  책임못질 말까지...  ㅡㅡ;;

강력한 구심력을 가진 사회란 늘 신기하다.  가령 왕가의 존재에 대해 덴마크 사람들이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넘친다.  사실 비유럽계 이민자들과 연관된 범죄 문제는 덴마크에서 사회적 논란거리(issue) 중 하나다.  통합(Integration)이라... 

예전에 이모네 살았던 집과 동네(Sabro) 그리고 S와 L이 다녔던 학교(Sabro-Korsvejskolen)를 둘러보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중학교라고 해야겠다.

오후에는 H씨가 일하는 오후스대학 병원 정신병원(Århus Universitetshospital, Risskov / Psykiatrisk Hospital i Århus)을 방문했다.  왠 정신병원인가 하겠지만 역시 사람 사는 구경(?)이 최고다.  또한 이 곳 병원 박물관(Museum Ovartaci, Museet Psykiatrisk Hospital i Århus)이 아주 특색있다.  역사 박물관(위층)과 미술관(아래층)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병원 역사도, 정신병원이지 않은가, 대단하지만 전시한 환자들 그림이 대단했다.  그야말로 신경질적인(?) 환상을 보는 사람들의 작품 답다. 

저녁에는 송별 만찬을 가졌다.  식구들 모두다.  Restaurant Seafood 해산물 식당.  유명한 음식점이다.  음식도 좋고 부두(마셀리스복 항구 Marselisborg Havn)에서 바다를 보며 식사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추천.  다시 말하지만 야외에서 식사한다면 여름이라도 저녁에는 여벌의 옷을 준비하는 게 좋은데 꽤 쌀쌀하기 때문이다.  덴마크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결국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군.  밤 늦도록 내 노트북를 열고 그동안 찍어놓은 사진을 거실에서 함께 보았다.  지루하도록 많았다.  오늘은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사진설명>

1 - 2 ... 회사 Danisco
3 - 5 ... 시장 Bazzar
6 - 17 ... 동네 Sabro
18 - 28 ... 학교 Sabro-Korsvejskolen
29 - 49 ... 오후스 정신병원
50 - 54 ... 식당 Seafood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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