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109, 사이토우 마리코 齋藤眞理子, 입국 入國, 민음의시 053, 민음사, 1993
- p.85, 사이토 마리코 齋藤眞理子, 단 하나의 눈송이,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2, 봄날의책, 2018
< 달램 >
사과를 씹듯이
가만히 시간을 씹고
한 마리의 상처입은 짐승처럼
조심조심 걸어가는 하루를 달랜다
한밤중에
사과를 씻듯이 꿈을 씻고
그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사과를 굴리듯이
꿈을
멀리 내일로 보내면서
1993년 일본인 시인이 '민음사'에서 한글로 낸 시집이 절판되고 난 다음, 2018년 '봄날의책'에서 이를 재출간 하였다. 크게 보면 달라지지 않았지만 몇 편의 시가 빠지고 또 새로 들어오기도해서 목차도 좀 다르다. 저자의 이름 표기가 바뀐 것처럼 달라진 표기법에 따른 그리고 저자의 퇴고에 따른 수정 사항을 반영하였다. 한자표기를 모두 한글로 바꾼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녀의 시에서 지금의 내가 보는 것은 역시 1991년 그 시간이다. 2018년의 책에서 저자는 각 시들의 창작 뒷얘기들을 적어놓았다. 꼭 그 덕분만은 아니더라도 사진과는 또 다른 1991년을 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의 한국을 살았다. 시가 왔다는 저자의 표현 그대로, 어찌보면 전에는 선명하지 않던 것들이 과거를 돌아보는 지금에서야 오히려 또렷하고 선연하다. 그래선가 다소 쓸쓸하고 애잔한 마음에 들어버렸다.
"나중에 서울이 생각날 때/덕수궁도 63빌딩도 남산타워도/생각나지는 않으리라/덕수궁 앞에 내리는 가랑잎/그것은 생각나리라 가을이 되면 그러나/밤마다 길마다 반짝거린 유릿조각들이(유리 조각들이) 더 생각날거다//왜 서울에서는 날마다 이렇게 많은 유리들이 깨지는가"
<달램>이란 시는 이런 내 심상의 흐름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 같아 새삼스레 그리운 뭔가를 떠올렸다. 겨울이 봄의 시작이듯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는가 보다.
at Idle Mo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