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앉아보니

책읽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비뇽 축제 연극 포스터(?)


사용자 삽입 이미지

Edward Hopper - Hotel Room


언젠가 깊은 그릇님이 클럽 게시판에  올린 사진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다.  매주 한 권이나 읽으면 다행이고 게다가 말랑말랑한 류가 대부분이니 별달리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래서'라고 해야할지 '그럼에도'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책을 볼 때면 문득 이거 뭐 하는 짓인가 그런 마음이다.  책 읽는 건 사실 버릇이다.  뭘 읽는지도 모른 채 폭주하는 기관차(?) 그대로 그저 읽고 그저 산다.  그도 탐욕이러니...  도대체 왜 책은 읽고 앉았는 건지...

박상륭의 소설집 평심 平心(문학동네, 1999) 중에서 소설 '로이가 산 한 삶'을 읽다 보니까 남 일같지 않았다.  어째 그러고 사는가?  ...  그런 마음이어선가 눈에 들어오는 구절도 간혹 있다.


p.226, 스타니스와프 렘 Stanislaw Lem, 강수백 역, 솔라리스 Solaris, 시공사, 1996

그런 작자들은 우리가 솔라리스와의 접촉에 실패하더라도 그 원형질을 연구하면 언젠가는 물질의 신비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야.  그건 마치 해독 불가능한 언어로 씌어진 책으로 꽉 찬 도서관 안에서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책표지 색깔이나 바라보는 주제에!

p.138, 폴 오스터 Paul Auster, 황보석 역,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 열린책들, 2000

그 모든 것들이 너무도 마구잡이였고, 너무도 잘못 해석되었고, 완전히 요점을 빗나가 있었다.  플라워의 박물관은 그림자들의 무덤, 공허한 정신의 미친 신전이었다.  만일 그런 물건들이 계속해서 그에게 아우성을 쳤다면 그 물건들이 불가해하고 그 자체에 대해 아무것도 드러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쉬는 결론 내렸다.  그것들은 역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한때 그것들을 소유했던 사람들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매력은 단지 물질적인 것으로서의 물건에 대한 것이었고, 플라워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떼내어져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계속 존재하도록 의미를 잃고 죽어, 목적도 없이 단지 그 자체로서 앞으로 계속 남아 있도록 선고 받은 방식이었다.  그것은 나쉬를 사로잡은 고독, 그의 기억 속으로 불타 들어온 돌이킬 수 없는 고립의 이미지였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는 절대로 거기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예전의 나는 이랬었겠지?  비록 만화책은 잘 보지 않았고 책장은 접지 않지만.  ^^


p.389,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민음사, 1994

만화보기


아까부터 외손녀 자매가 꼼짝 않고 만화책에 눈을 붙이고들 있다.  나는 그들 어깨 너머로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소짓는다.
외 손녀 자매는 만화책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않는다.  음식을 갖다 줘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난 한참 뒤에야 책을 놓고 책을 한 번 쓰다듬는다.  언니 쪽이 어드메쯤의 책장 하나를 곱게 접는다.  그렇게 얼마큼은 남겨 둔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때 나에게도 그랬듯이 그건 그들만의 비밀이다.  그들은 지금 한없이 행복하리. 


그래 그런가 한편 내 마음은 늘 이 곳에 저문다네.


pp.12-16,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우석균 역,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El Hacedor, 민음사, 1999

축복의 시 POEMA DE LOS DONES
   - 마리아 에스떼르 바스께스(A Maria Esther Vázquez)에게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윈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
눈에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원고들같이
까다로운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처 없이 헤매이네.

백과사전, 아틀라스, 동방
서구, 세기, 왕조,
상징, 우주, 우주론을
벽들이 하릴없이 선사하네.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


Nadie rebaje a lágrima o reproche
Esta declaración de la maestría
De Dios, que con magnífica ironía
Me dio a la vez los libros y la noche.

De esta ciudad de libros hizo dueños
A unos ojos sin luz, que sólo pueden
Leer en las bibliotecas de los sueños
Los insensatos párrafos que ceden

Las albas a su afán. En vano el día
Les prodiga sus libros infinitos,
Arduos como los arduos manuscritos
Que perecieron en Alejandría.

De hambre y de sed (narra una historia griega)
Muere un rey entre fuentes y jardines;
Yo fatigo sin rumbo los confines
De esa alta y honda biblioteca ciega.

Enciclopedias, atlas, el Oriente
Y el Occidente, siglos, dinastías,
Símbolos, cosmos y cosmogonías
Brindan los muros, pero inútilmente.

Lento en mi sombra, la penumbra hueca
Exploro con el báculo indeciso,
Yo, que me figuraba el Paraíso
Bajo la especie de una biblioteca.

Algo, que ciertamente no se nombra
Con la palabra azar, rige estas cosas;
Otro ya recibió en otras borrosas
Tardes los muchos libros y la sombra.

Al errar por las lentas galerías
Suelo sentir con vago horror sagrado
Que soy el otro, el muerto, que habrá dado
Los mismos pasos en los mismos días.

¿Cuál de los dos escribe este poema
De un yo plural y de una sola sombra?
¿Qué importa la palabra que me nombra
si es indiviso y uno el anatema?

Groussac o Borges, miro este querido
Mundo que se deforma y que se apaga
En una pálida ceniza vaga
Que se parece al sueño y al olvido.

(출처: Literatura.US)


-------------------------


p. 249,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Andrej Tarkowskij, 김창우 역, 봉인된 시간 Die Versiegelte Zeit, 분도출판사, 1997(1991 초판)

(안내인)
이 영화에서 "금지 구역"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인간들의 목표는, 그들의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런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하는 하나의 방이라는 사실을 나는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방으로 가는 길에서 이 금지 구역의 이상한 구역들을 가로지르는 동안 안내인은 작가와 학자에게 언젠가 실제로 일어 났었던 일이거나 혹은 전설적인 디코브라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디코브라스는 이 동경해 마지않던 방으로 오면서 자기 때문에 죽은 형을 다시 소생시켰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방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금지 구역"은 바로 그가 실제로 원했던 가장 비밀스런 소원을 성취시킨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성취하고 노력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디코브라스는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영화 속 자막에서는 디코브라스 대신 고슴도치고, 형이 아닌 동생이고, 안내인이 아니라 작가가 하는 얘기다. 

그의 영화는 감동적이다.  그의 글 역시 그 진지함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다.  다만 더하자면 아마도 작가는 둘 정도로 나누어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의식과 무의식 이렇게.  웬지 내게는 그 마음이 수도 없이 많은 듯 보인다. 

어떤 비밀스러운 소원인가, 비밀한 욕망의 비밀한 욕망 그 속의 욕망, 그 속의 욕망, 그 속의...  마치 두 개의 거울 사이에 사물을 놓았을 때 사물은 거울 속으로 수 없이 자신을 복제하는 것처럼.  마음은 늘상 하나가 아니지 않을까?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은 서로 다른 것 아닐까?  그대를 기억하려 하고 그대를 잊으려 하는 마음은 서로 다른 것 아닐까?  ...

그 마음이 하나, 즉 일심(一心)이 되면 곧 가득찬다.  그럼으로써 마음이 비워진다.  마음이 비면 쉬게 된다.  다 놓고 쉬는 것, 이것을 선(禪)이라 한다.  크게 쉬는 자, 그를 일러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이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기억이 맞기를 바란다.

...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뭐, 그런 얘기다.